스페인 '엘스 엥하나레도스'

1. 혼돈 속의 질서 – 스페인 ‘엘스 엥하나레도스’ 축제의 기원과 역사

스페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양한 축제를 보유한 나라지만, 그중에서도 **‘엘스 엥하나레도스(Els Enfarinats)’**는 가장 독특하고 기이한 전통 축제로 손꼽힌다. 이 축제는 매년 12월 28일, 스페인 동부 알리칸테(Alicante) 지방의 작은 마을, 이비(Ibi)에서 열리는 밀가루와 달걀 전쟁이다. 축제 참가자들은 하얀 밀가루 구름과 깨진 달걀로 뒤덮이며, 마을 전체가 하루 동안 전쟁터로 변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엘스 엥하나레도스’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풍자적인 전통 의식이다. 이 축제의 기원은 로마 가톨릭의 ‘무고한 아이들의 날(Día de los Santos Inocentes)’과 깊은 관련이 있다. 무고한 아이들의 날은 신약성경의 기록에 따라, 헤롯 왕이 예수 탄생 이후 두 살 이하의 남자아이들을 학살한 사건을 기리는 날로, 중세 이후 가톨릭 문화권에서는 이날을 장난과 익살로 기념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비 마을에서는 이 기념일을 더욱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하여, 밀가루와 달걀을 이용한 ‘가짜 쿠데타’ 전쟁을 벌이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즉, 참가자들은 마을을 ‘쿠데타’로 점령한 후, 엉뚱한 법을 세우고 시민들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놀이를 펼치며, 이 모든 수익금은 자선단체에 기부된다. 이러한 전통은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사회적 풍자와 공동체 정신을 담고 있는 의미 있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2. 혼돈의 하루 – 엘스 엥하나레도스 축제의 진행 방식과 퍼포먼스

이비 마을에서 펼쳐지는 ‘엘스 엥하나레도스’는 단순한 밀가루 싸움이 아니라, 철저한 규칙과 역할에 따라 진행되는 퍼포먼스다. 축제 참가자들은 두 개의 주요 그룹으로 나뉘어, 극적인 ‘모의 쿠데타’를 연출하며 전쟁을 벌인다.

▶ 축제의 주요 참가자들

1. ‘엥하나레도스(Enfarinats, 밀가루를 뒤집어쓴 사람들)’
   • 이들은 축제의 핵심 인물로, 마을을 점령하는 ‘가짜 정부’ 역할을 맡는다.
   • 엥하나레도스는 우스꽝스러운 군복을 입고, 얼굴을 밀가루로 뒤덮은 채 마을을 장악하며 새로운 법을 선포한다.
2. ‘라 오포시시오(La Oposición, 반대파)’
   • 엥하나레도스에 대항하는 반대 세력으로, 새로운 질서에 저항하는 시민들이다.
   • 이들은 엥하나레도스가 내리는 벌금과 엉뚱한 법령에 반발하며, 격렬한 밀가루와 달걀 전투를 벌인다.

▶ 축제의 진행 과정

1. 마을 점령 선언
   • 아침 일찍, 엥하나레도스는 마을 광장에서 쿠데타를 선포하고 새로운 법을 공표한다.
   • 이들은 가짜 시장(Mayor)과 경찰 역할을 맡아, 마을 주민들에게 엉뚱한 세금을 부과하고, 웃긴 죄목을 만들어 ‘벌금’을 걷는다.
2. 밀가루와 달걀 전투
   • 반대파인 ‘라 오포시시오’는 이에 저항하며, 밀가루와 달걀을 던지며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 참가자들은 밀가루 폭탄과 물풍선을 사용하며, 마을 전체가 하얀 먼지 구름으로 덮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3. 최종 평화 협정과 자선 기부
   • 몇 시간 동안 지속된 전쟁이 끝나면, 엥하나레도스와 라 오포시시오는 휴전을 선언하며 평화 협정을 체결한다.
   • 이 과정에서 걷어진 ‘벌금’과 모금된 기부금은 지역 자선단체에 전달되며, 축제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된다.

이 축제는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전통적인 사회 풍자와 공동체 정신을 담은 행사로, 마을 주민들에게는 큰 자부심이자 매년 기다려지는 행사다.

 

 

3. 유머와 풍자의 미학 – 엘스 엥하나레도스가 지닌 사회적 의미

‘엘스 엥하나레도스’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스페인 사회에서 풍자와 해학이 결합된 독특한 전통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 풍자의 역할

• 축제 참가자들은 권력을 가진 ‘가짜 정부’를 형성하여 마을을 점령하고, 기괴한 법을 세우며 시민들을 괴롭힌다.
• 이는 과거 스페인 역사에서 권위주의적인 통치자들을 조롱하는 상징적인 퍼포먼스로 해석될 수 있다.
• 주민들은 이러한 가짜 권력에 대항하며 저항하는데, 이 과정에서 밀가루와 달걀이 무기가 되어 자유로운 표현의 장이 펼쳐진다.

▶ 공동체 정신과 자선 활동

• 이 축제에서 걷어진 ‘벌금’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실제로 지역 자선단체에 기부되며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 이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중요한 기회로 작용한다.

이처럼 ‘엘스 엥하나레도스’는 단순한 장난이나 난장판이 아니라, 사회적 풍자와 공동체 정신을 담고 있는 의미 있는 전통 행사다.

 

 

4. 현대에서 다시 살아나는 전통 – 엘스 엥하나레도스의 글로벌 영향과 지속 가능성

오늘날 ‘엘스 엥하나레도스’는 스페인의 작은 마을 축제를 넘어, 세계적인 이색 축제로 주목받으며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중요한 문화 행사로 발전하고 있다.

▶ 관광 산업과 축제의 성장

• 최근 몇 년간 이 축제는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화제가 되며, 해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 이비 마을은 축제를 활용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독특한 문화 경험을 제공하는 여행지로 발전하고 있다.

▶ 지속 가능한 축제로의 발전

• 일부에서는 밀가루와 달걀을 낭비하는 것에 대한 환경적 우려가 제기되었으나, 최근에는 친환경 대체재를 활용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 축제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낭비를 줄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엘스 엥하나레도스’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축제로서, 앞으로도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가능성이 큰 전통 행사다.